기후위기·AI·순환경제 시대가 열리면서 환경법도 ‘대전환’을 요구받고 있다한국환경법학회, 첫 환경법률가대회 열고 미래 환경법제 방향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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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호 법학회장. 사진=환경기자단 공동 |
기후위기와 탄소중립, 인공지능(AI), 생물다양성, 순환경제가 국가 정책과 산업의 핵심 의제로 부상하면서 환경법의 역할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과거 대기·수질·토양오염과 폐기물 등 환경오염 행위를 규제하고 피해 발생 이후 책임을 묻는 데 무게를 뒀다면, 이제는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 산업·통상, 첨단기술, 생태계 보호까지 법적 논의의 범위가 확대되는 모습이다.
특히 탄소규제와 공급망 환경기준이 기업의 생산·투자·수출 전략과 맞물리고 AI 데이터센터의 전력·용수 사용, 재생에너지 설비 폐기물, 그린워싱 등 과거 환경법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면서 환경법제가 산업과 기술의 변화를 얼마나 따라갈 수 있느냐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처럼 환경법의 역할과 경계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국내 환경법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현행 법체계를 점검하고 미래 환경법제의 방향을 모색했다.
한국환경법학회(회장 김태호 헌법재판소 재판연구관)는 지난 28일 동국대학교 법학관에서 ‘환경법의 현재와 미래-현안과 쟁점’을 주제로 제1회 환경법률가대회와 제17회 대학생·대학원생 환경법 우수논문 경진대회를 개최했다.
한국환경법학회와 한국법제연구원, 동국대학교 비교법문화연구원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환경공단(K-eco), 한국환경산업기술원(KEITI), 한국환경연구원(KEI)이 후원했다.
![]() ▲ 동국대 비교법문화연구원 홍대운 원장 / 사진=환경기자단 공동 |
내년 창립 50주년을 앞둔 한국환경법학회가 그동안 다섯 차례 진행한 환경법 분야 신진학자 학술대회를 확대·개편해 처음으로 ‘환경법률가대회’를 마련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환경문제 자체가 복잡해지면서 특정 환경법률이나 학문 분야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진 현실을 반영해 학계와 법조계, 연구기관, 공공기관, 젊은 연구자들이 함께 환경법의 새로운 역할을 논의하는 장으로 외연을 확장한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특별세션을 포함해 모두 6개 세션이 운영됐다.
논의 주제 역시 전통적인 환경법의 영역과 새롭게 부상하는 환경문제를 동시에 아우르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원전 방사성오염수 방류 문제를 비롯해 생태질서와 헌법적 가치, 기후위기로 발생하는 환경손해와 배상·보상제도, 자원순환 관점에서의 에코디자인 법제화, 토양오염 분쟁의 법적 쟁점, 탄소중립 이행수단의 고도화와 탄소가격조정제도, 저탄소 연료 법제 등이 주요 논의 대상으로 올랐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환경법의 역할을 ‘오염 발생 이후 규제와 처벌’에 한정하지 않고 오염과 환경피해를 발생 단계부터 예방하고 산업·제품의 설계와 생산과정에 환경적 책임을 반영하려는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에코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제품이 폐기된 이후 재활용 여부만 따지는 방식에서 벗어나 제품을 설계하는 단계부터 자원 사용과 수리·재사용·재활용 가능성, 폐기물 발생 등을 고려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문제다. 순환경제가 폐기물정책을 넘어 생산과 산업정책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토양오염 역시 환경법의 오래된 과제지만 여전히 책임 주체와 정화 비용, 오염원인자 특정, 토지소유자 책임 등을 둘러싼 법적 분쟁 가능성이 남아 있는 분야다.
![]() ▲ 남광우 한국환경산업기술원장 / 사진=환경기자단 공동 |
결국 이번 학술대회가 던진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환경법이 이미 발생한 환경오염을 처리하는 법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환경피해를 사전에 예방하고 산업과 사회의 전환 방향까지 제시하는 법체계로 발전할 것인지의 문제다.
이 같은 변화는 함께 열린 제17회 대학생·대학원생 환경법 우수논문 경진대회에서도 확인됐다.
대학원생 부문 대상인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상은 서울대학교 공자영 학생의 ‘어망에 의한 바닷새 혼획 실태와 법적 규율’ 연구가 차지했다.
어업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바닷새 등이 어구에 걸려 희생되는 혼획 문제를 법적 규율의 대상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호가 환경법의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우수상인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상은 경희대학교 염나은·김다빈 학생의 ‘장사방식 전환에 따른 환경법적 규율 공백과 개선방안’이 선정됐다.
우수상인 한국환경법학회장상은 서울시립대학교 양승진 학생의 ‘그린워싱 규제에 대한 기업의 예측가능성 제고 방안’, 장려상은 연세대학교 이한송 학생의 ‘해양환경 통합관리의 행정법적 구현과 규범적 기초’ 연구가 각각 받았다.
이 가운데 그린워싱 문제는 환경법이 산업·기업활동과 직접 맞닿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기업의 친환경·탄소중립 홍보가 확대될수록 무엇을 친환경으로 인정할 것인지, 과장되거나 근거가 부족한 환경성 표시를 어떤 기준으로 규제할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동시에 기업이 법 위반 여부를 사전에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한 규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문제도 뒤따른다.
![]() ▲ ‘제17회 대학생·대학원생 환경법 우수논문 경진대회’ 수상자 / 사진=환경기자단 공동 |
대학생 부문에서는 환경법의 영역이 첨단산업까지 확대되는 흐름이 더욱 뚜렷했다.
서경대학교 이나현 학생은 ‘지속가능한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데이터센터 특별법 고찰과 개선방안’을 연구해 한국환경연구원장상을 받았다.
AI 산업의 급성장으로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서 막대한 전력 소비와 냉각용수 사용, 전력망 부담, 입지 갈등 등도 새로운 환경·에너지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정보통신시설이 아니라 에너지와 물, 탄소배출, 지역 환경수용성의 문제까지 포함해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서 향후 환경법제가 다뤄야 할 대표적인 신산업 영역으로 꼽힌다.
동국대학교 김정우·이경현 학생은 ‘생태법인제도 도입에 대한 당위성 검토 및 입법론적 제언’으로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상을 받았다.
국민대학교 노헌영·윤지원·조현빈 학생은 ‘신재생에너지 폐기물의 적정처리를 위한 법리적 고찰과 입법적 대안’, 서경대학교 임신영 학생은 ‘PET 폐기물의 순환경제 전환을 위한 환경법적 개선방안 연구’로 각각 장려상에 선정됐다.
수상 논문들의 주제를 한데 놓고 보면 현재 환경법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보다 선명해진다.
바닷새 혼획은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호, 그린워싱은 기업의 환경책임과 소비자 보호, AI 데이터센터는 첨단산업과 에너지·물 문제, 신재생에너지 폐기물과 PET는 순환경제와 생산자 책임의 문제로 각각 연결된다.
환경법 연구의 무게중심이 기존 오염규제에서 기후·에너지·산업·기술·생태계를 아우르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계가 환경법의 변화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환경기준이 기업 활동의 외부 조건이 아니라 생산방식과 공급망, 제품설계, 투자와 수출 경쟁력까지 좌우하는 요소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탄소와 공급망, 순환경제 등에 관한 환경규범이 강화되는 것도 이 같은 변화의 한 단면이다. 환경규제에 대한 대응 능력이 비용의 문제를 넘어 기업의 시장 접근성과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고 있는 셈이다.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 재생에너지, 자원순환, 친환경 모빌리티 등 이른바 미래산업 역시 대부분 에너지와 자원, 탄소, 환경영향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환경법이 지나치게 경직될 경우 산업혁신을 가로막을 수 있지만, 반대로 법과 제도가 산업 변화보다 뒤처질 경우 새로운 환경피해와 사회적 비용을 뒤늦게 떠안을 가능성도 있다.
환경보호와 산업경쟁력을 서로 반대되는 가치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산업의 전환을 유도하면서 환경적 비용을 사전에 줄일 수 있는 정교한 법제 설계가 필요한 이유다.
![]() ▲ 한국환경법학회가 지난 28일 동국대학교 법학관에서 개최한 ‘환경법의 현재와 미래-현안과 쟁점’ 학술행사를 마치고 기념 촬영. / 사진=환경기자단 공동 |
정부 환경정책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이행과 탄소중립, 순환경제 전환, 생물다양성 보전, 환경영향평가 고도화 등의 정책은 선언이나 행정계획만으로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비용과 책임은 누가 부담하는지, 이를 위반했을 경우 어떤 책임을 지는지를 법률과 제도로 구체화해야 실제 정책 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앞으로는 기후소송과 환경손해배상뿐 아니라 AI와 데이터센터의 환경영향, 자연자본, ESG와 환경정보 공개, 디지털 환경관리 등 지금까지 환경법의 중심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영역에서도 새로운 법적 수요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환경법 전문인력 양성도 중요해지고 있다.
이번 대학생·대학원생 우수논문 경진대회가 단순한 학생 학술행사를 넘어 의미를 갖는 이유다. 환경법의 영역이 산업·통상·기술·금융 등으로 확장될수록 법학뿐 아니라 환경과학, 경제, 산업, 에너지정책을 함께 이해하는 융합형 환경법 전문가에 대한 수요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1977년 창립된 한국환경법학회는 헌법·행정법·민법·형법·국제법 등 다양한 분야의 법학자와 법조 실무가 등 700여 명이 활동하는 환경법 분야 대표 학술단체 가운데 하나다. 1979년부터 학술지 ‘환경법연구’를 발간하며 환경법 연구와 법제 발전에 참여해왔다.
창립 50주년을 앞두고 처음 열린 환경법률가대회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후위기와 AI, 에너지 전환과 순환경제의 시대에는 환경문제가 발생한 뒤 책임을 묻는 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산업과 기술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 그리고 미래세대와 생태계의 가치를 법체계 안에서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까지 환경법이 답해야 할 질문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환경법의 ‘대전환’은 이제 환경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과 기술, 통상 그리고 국가 경쟁력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