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일이 급선무라 교육에 열의만 갖고 있을 뿐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정말 어렵고 힘든 시장 상인들의 자녀들에게 ‘대리모’가 되어 인성지도와 함께 공부를 잘 가르치라”는 유언과 같은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게 된 것이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교육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고 말하는 대명아카데미 정동선 원장.
따라서 어떠한 교육이 이루어 진다해도 인성이 결여된 교육은 의미가 없는 교육이며, 사회적 구성원으로서도 존재가 위태롭다. 지금이라도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도 인성을 중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가져야 하며, 시급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부산광역시 동래구에 위치한 인성교육의 요람 ‘대명아카데미’, 입구에 들어서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들리며 마주친 손님에게 두손을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밝고 큰소리로 “큰 인물이 되겠습니다.” 라며 반갑게 맞아 주는 아이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시험 위주의 반복적인 주입식 교육에 피곤과 무기력해진 학생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환한 얼굴과 미소로 대한다. 이와 같은 대명아카데미 학원의 모습은 다른 학원은 물론 학교에서 조차 볼 수 없는 풍경으로 한눈에도 예절교육 등 인성교육을 제대로 받고 있는 학생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정 원장은 이어서 “어떻게 하면 전인교육을 시킬 것인가? 라는 의문점과 우리 아이들이 진정 행복한 모습으로 즐겁게 공부를 할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아이들의 학습 능력과 인성을 함께 키워나갈 수 있고 그 방법은 무엇일까? 라는 진지한 고민을 수십 차례를 하면서 결론을 얻어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문제에 대한 답이기에 어느 누구도 나서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고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사회현상인데 정 원장은 현장체험과 시행착오를 통해서 직접 얻어냈던 것이다.
지금 교육 현장에서는 나날이 흉포화 되어가는 ‘묻지마 범죄’와 인명경시 풍조의 사회현상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국회의원들이 부랴부랴 입법을 추진하고 발의하여 결국 ‘인성교육 진흥법’을 제정하고 시행하기에 이르렀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이 없지 않다. 그리고 법만 제정을 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고 대책이 시급한데 미봉책에 급급하고 있는 것 또한 교육계의 심각한 현실이다. 사교육기관인 학원도 엄연하게 정부에서 인가한 교육기관인 만큼 터부시하고 푸대접만 할 일이 아니라 공교육기관이 하지 못하는 우수한 교육기법은 사례를 발표하고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직접 방문해서 벤치마킹을 하고 공교육기관인 학교의 실정에 맞게 접목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인성교육으로 자리매김한 대명아카데미 학원 정동선원장의 특별한 교수기법과 교육철학은 분명히 남과 다르고 배울 점을 많이 지니고 있다.
대명아카데미의 차별화된 수업 방식은 총 5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우선 강사들의 기본적인 수업이 진행된 후 발표식 수업이 이루어지고, 아이들이 발표를 통해 학습 내용을 자기 것으로 흡수한 후에는 토론식수업이 이루진다.
이때 토론식 수업은 그날 가장 문제를 적게 틀린 학생이 진행을 맡아 이루어지는데, 자신의 학습경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다. 이렇게 학습이 완료되었다고 해서 수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곧바로 인성 프로그램인 ‘1일1선’발표와 ‘미인대칭’프로그램이 연이어 진행되는데 ‘1일1선’은 학생들이 자신이 그 날 하루 동안 한 착한 일을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그 경험을 나누는 시간으로 꾸며진다.
수업 가장 마지막 시간에 이루어지는 ‘미인대칭’은 다 같이 일어나 2명씩 짝이 되어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으로, 선생님이 ‘미’라고 말하면 서로 ‘오늘도 공부하느라 수고 했어’ 라는 격려의 뜻을 담아 장미꽃 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선물한다.
또 선생님이 ‘대’라고 하면 그날 읽은 책이 무엇인지, 내용이 어떠했는지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되고, ‘칭’이라고 하면 서로 스킨십을 하며 상대의 대한 구체성 있는 칭찬을 나누게 된다. 마지막으로 ‘인’이라고 하면 ‘큰 인물 되겠습니다!’ 라는 인사를 끝으로 수업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된다.
정 원장은 2018년 올해, ‘동미’라는 예명으로 성인가요 가수로 데뷔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노래를 좋아하고 남다른 실력으로 주변의 권유가 많았으며, 본인도 가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잠시 꿈을 접고 유언과 같은 어머니의 유지를 받들어 교육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교육 사업으로 나름의 정상에 선, 성취감도, 비록 지역 기반이지만 지역발전 선도역할의 자부심 뒤에는 항상 목마른 갈증이 있었다. 노래에 대한 갈망이 김 원장을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새로운 길로 이끈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돌아온 김 원장은 데뷔와 함께 발표한 ‘자기’, ‘꽁꽁’, ‘나 얼마나’, ‘콱 박힌 당신’ 등의 반응이 의외로 좋아 팬카페까지 결성되며 축제 및 각종 행사에서 ‘동미’를 찾는 콜이 쇄도 하고 있다.
교육계의 대모, 김 원장의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이 얼마나 화려하게 빛날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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