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진심’ 그리고 ‘뚝심’…박홍근 국회의원

언제나 국민의 편…“늘 기본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영한 | 기사입력 2020/05/19 [15:52]

[정치인]‘진심’ 그리고 ‘뚝심’…박홍근 국회의원

언제나 국민의 편…“늘 기본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영한 | 입력 : 2020/05/19 [15:52]

▲ 박홍근 국회의원


박홍근 국회의원
(서울 중랑을)이 지난 2018년 1013‘2018자랑스런한국인 인물대상시상식에서 의정발전 공헌대상을 수상했다.

 

박 의원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비례대표로 출마를 노렸지만 후보에 들지 못했고, 18대 국회에서는 김상희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바 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중랑을 지역에 출마를 선언했고, 혼전 속에서 새누리당 강동호 후보를 854표차로 제치고 간신히 당선됐다. 201576일에는 국회 사상 최초로 국회 차원의 동물보호·복지 논의를 이끌어 갈 동물복지국회포럼을 창립했다.

 

또한 2016311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 중랑을 선거구의 더불어민주당 현역 단수후보로 출마해, 강동호 새누리당 후보를 상대로 우세를 보이며 최종적으로 약 8000여표 차로 승리했다. 그리고 2017516, 우원식 원내대표에 의해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로 선임됐다.

 

박홍근 의원은 1969년 전라남도 고흥군의 시골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옆집에 한 살 많은 소아마비 친구를 위해 초등학교는 왕복 3Km, 중학교는 왕복 8Km였는데 친구가 목발을 짚고 가방을 들기 불편하니 매일 친구 가방을 메고 학교를 오갔다.

 

그렇게 시골 소년의 소박함으로 선생님 말씀 잘 듣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던 초·중학교 시절을 보냈다. 한 번은 길에서 당시에는 큰 돈 이었던 천원짜리 지페 9장인가를 주워서 친구한테 기다리라고 하고 300M를 뛰어가 파출소에 주인 찾아 달라고 신고 한 적도 있고 초등학교 졸업할 때 전라남도에서 착한 어린이상이라는 것도 받았다. 대학 와서도 학생 운동 할 때 워낙 원칙적이다 보니 별명 중에 하나가 박도덕이었다. 박홍근은 그런 사람이다.

 

순천효천고등학교 재학 시절 원래 기자의 꿈을 가졌다. 그런데 고3이 되니 내신은 1등깁이나 영어와 수학 점수가 너무 등락이 심해 담임선생님께서 원하는 학교로 원서를 안 써주겠다고 해서 잠깐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그러다가 경험 삼아 시험을 보자고 했는데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붙게 됐다.

 

친구들도 재수하고 본인도 재수를 꿈꾸고 있다가 부모님 때문에 학교를 안다닐 수가 없이 다니게 됐는데 1988년도 경희대 국문과는 학생운동 분위기가 강했다. 당시 상황을 박 의원은 워낙 어려운 형편 가운데 학교를 다니던 터라 역사적 정도에 맞게끔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생각하면서도 선뜻 내 손발은 부모님과 진로를 생각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그러다 5월 광주 망우리 묘지와 문무대라는 학생군사훈련을 갔다 오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 제 스스로 옳은 것을 옳다 이야기 하지 못하는 양심, 이런 것을 고민했다고 그는 말한다.

 

운동권 활동을 하게 된 계기와 관련 그는 광주 망우리에서 많이 울었어요. 어릴 때 간접적으로 들었던 과는 달리 그 앞에 섰을 때 살아 있는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본질적 질문을 하게 됐다그렇게 좀 늦게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됐는데 늦게 시작하다 보니 더 철저하게 원칙적으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후배들에게도 무서운 선배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원칙적으로 공부, 생활, 시위까지 모든 면에서 완벽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가졌다고 회고한다.

 

대학 재학 시절에 경희대 총학생회장을 하면서 1992년 대통령 선거를 하던 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권한대행을 6개월 맡아 민자당 낙선 운동에 참여하는 등, 학생운동 말기에 활동했다. 학생 운동 이후에는 소수가 선동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제는 다수가 운동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대중적 통일공동체인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모임을 만들었고, 문익환 목사가 이끌었던 단체에서 7개월 정도 일을 했다.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했지만 공무원 생활은 답답하고 안 맞아 다시 시민단체로 복귀했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한 것은 2007년 민주당계 정당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때, 당시 이른바 정당과 시민 세력의 대통합을 화두로 벌어지던 열린우리당의 해체와 민주당 계열 정당의 통합 작업 당시 시민사회 세력의 대표격으로 미래창조연대라는 조직이 생겼다.

 

청년 담당을 맡아 활동했던 박 의원은 기존의 여러 신당과 열린우리당 등과 합당하면서 생긴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되면서 자연스럽게 합류해서 대변인, 17대 대통령 선거 선대위 청년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물론 대선에서는 당연히 압도적으로 패배했고, 그 뒤에는 주로 민주당 계열에서 청년위 활동을 계속 했다.

 

박 의원이 청년운동을 할 때부터 알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시민정치운동을 할 때부터 제대로 보게 됐다는 조국 민정수석은 박 의원에 대해 첫째, 진심 그 자체의 사람 둘째, 뚝심이 있는 다부진 사람이라며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은 끝까지 해내는 면이 참 좋게 느껴졌다고 회고한다.

 

이어 국회의원이 되고 난 뒤에도 꾸준히 지역구에서 활동을 하며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지역 주민과 함께 낮은 곳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소탈하게 진실하게 대하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을 꾸준히 간직해왔던 박홍근 의원은 <한국경제>신문사가 41일 발표한 20대 국회의원 임기 중 지난 2년간 개최된 84회 본회의에 모두 출석한 개근왕 20명에 포함되며 성실한 정치인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정치를 시작했던 초심을 잃지 않는다. 국민의 대표라는 생각을 항상 잊지 않고, 최대한 국민의 편에 서서 의정활동을 진행하고자 하는 박 의원은 국회의원으로서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회의 참석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늘 기본에 충실하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박 의원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진심그리고 뚝심이다.

 

 
  • 도배방지 이미지

정치·행정 많이 본 기사